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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네소타 나이스'의 그늘

한국일보 4일 전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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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게티이미지뱅크


‘미네소타 나이스’ 라는 표현이 있다. 미네소타는 내가 사는 위스콘신주 서쪽에 이웃해 있는데, 스칸디나비아계 이민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미네소타 나이스'에 대해 흔히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곳 출신들에게 물으면 유난히 친절하고 쾌활하며 겸손한 미네소타 사람들의 성향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겉으로는 공손하고 친절하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미네소타 사람들의 이중성을 비꼬는 표현이다. 미네소타뿐 아니라 중서부 사람들 전반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상이기도 하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뉴욕에 살았는데 겉으로 친절하지만 속마음을 알기 어려운 중서부 사람들보다 무심하고 무례해도 솔직한 뉴요커들이 더 편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도 쉽다는 견해를 흔히 접했다.

막상 중서부 사람이 되어 보니 이곳 사람들이 일상에서 더 친절하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처음 이사오던 날 이삿짐을 푸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이웃이 인사를 하러 왔다. 층간 소음에 항의하러 찾아오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던 뉴욕의 이웃과 대조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자연스럽다. 한번은 퇴근길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렸는데, 버스에서 한 두번 인사를 나눈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발견해 우리집까지 걸어와 돌려주었다. 요즘 산책을 하다 맞은 편에 사람이 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서로 몇 보씩 옆으로 비켜 주는데, 많은 사람들이 고갯짓이나 눈웃음으로 인사를 교환한다.

이게 다 겉치레일 수 있지만 그래도 솔직히 무례와 무관심보다는 이런 작은 유쾌함과 친절함이 더 기분 좋은 게 사실이다. 사회학자 고프먼은 일상의 대인관계를 무대에서의 공연에 비유했는데, 어차피 공연이라면 서로 친절하고 유쾌한 공연이 싫을 이유가 없다. 또 겉으로 친절한 사람들이 굳이 적대감이나 음흉한 마음을 감추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으면 마음이 밝아지는 것처럼 늘 타인을 친절하게 대하면 우리 속마음도 조금은 예뻐지지 않을까? 사회학자 랜달 콜린스는 일상의 작지만 기분 좋은 대인관계가 누적되어 큰 사회적 연대를 이룬다고 했다. 이런 일상의 사회적 결은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자본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되는데, 상호 협력과 사회규범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관계망을 이르는 개념이다. 사회자본을 측정하는 지표에서 미네소타가 늘 상위권에 오르는 걸 보면 ‘미네소타 나이스'를 삐딱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미네소타 나이스'의 다른 그늘이 있다.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뽑히지만 동시에 인종 간 격차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한데, 흑인들의 소득은 백인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실업률은 두 배 이상 높다.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도시의 남쪽 지역은 흑인들이 모여 사는데,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져 온 인종차별적 주택 정책의 결과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가 예외적인 사건도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비슷한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 흑인을 죽인 경찰이 처벌받은 경우는 없다. ‘미네소타 나이스'가 흑인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는 적용되지 않나 보다.

이런 사회자본의 그늘은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지역들이 대부분 당시 독일에서 사회자본이 가장 높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어느 정치학자는 그런 지역의 풍부한 일상적 사회생활이 히틀러 성공의 숨은 공로자라고 꼬집기도 했다. ‘미네소타 나이스'가 일상을 더 쾌적하게 만들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정의와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다. ‘미네소타 나이스'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 안의 타자가 있을 때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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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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