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페이지

[단독] 감사 전날밤 원전파일 삭제...공무원, 윗선 묻자 “신내림 받았나봐”

조선일보 2020.12.02 원문보기
감사원이 작년 말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관련 정보가 담긴 산업통상자원부 PC를 확보하기 전날 밤 PC 속 원전 문건 444개를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이 검찰과 감사원 조사에서 “감사 정보를 미리 들은 적이 없다”며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검찰 안팎과 법조계에선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황당한 진술”이란 말이 나온다.

조선일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경제성 조작 혐의'등 과 관련해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압수 수색에 나선 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혁신정책관실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에서 근무했던 A씨는 일요일인 작년 12월 1일 밤 원전정책과 사무실 PC에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개를 삭제했다. 바로 그다음 날인 2일 감사원은 이 PC를 가져가 조사했다. 검찰과 감사원은 A씨를 상대로 ‘감사원이 PC를 압수할 것이니 월성 1호기 관련 파일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윗선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는 “감사원이 PC 제출 요구를 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준 사람은 전혀 없다”며 “자료를 삭제한 다음 날 감사원이 PC를 들고 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았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의 PC 확보 하루 전에 자료를 삭제한 건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은 A씨에게 감사 정보를 미리 알려주며 문건 삭제를 지시한 ‘윗선’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A씨가 작년 11월 중순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당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국장)과 원전산업정책과장이었던 상관 두 명과 함께 감사원 감사 관련 ‘대책 회의’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서 원전산업정책과장을 지낸 산업부 간부가 A씨에게 “PC 자료 삭제는 주말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한다. 월성 1호기 폐쇄를 주도한 산업부 공무원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PC 속 파일을 삭제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A씨가 사정기관에서 ‘신내림’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윗선’을 믿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여러 혐의 있는데 ‘구속 방침’ 제동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이 지난달 24일 이 산업부 공무원들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대검 반부패·강력부에 보고한 것은 PC 자료 삭제를 지시한 ‘윗선’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한 날이었다. 대전지검은 이들에게 감사원법 51조의 ‘감사방해죄’와 그 외 다른 혐의도 적용해 영장 보고서에 포함했다.

그러나 대검 반부패부는 “이 사건의 핵심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이고, 감사방해죄로 구속이 된 전례도 거의 없다”며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애당초 월성 1호기 수사의 본류는 경제성 평가 조작과 원전 자료 444개 삭제 두 가지였고, 감사방해죄 외 다른 혐의가 영장 보고서에 더 담겼다” “윤 총장이 당시 자리에 있었다면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은 지난 8월 추 장관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지금 자리에 앉았다.

◇검찰, 한수원 이사들 소환

이와 별도로 대전지검은 2018년 6월 15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의 이사들을 최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당시 이사회 의장이 월성 1호기 폐쇄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조성진 교수에서 다른 외부 이사로 갑자기 바뀐 이유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검은 또 그해 6월 15일 이사회 회의 소집 사실이 회의 전날에야 외부 위원들에게 공지된 점과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핵심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 결과를 사전에 외부 위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이유 등을 물었다고 한다. 검찰 주변에선 “수사팀이 당시 급작스럽게 한수원 이사회 회의가 개최되고, 월성 1호기 폐쇄 결론이 난 과정에 산업부와 한수원 등이 개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라는 말이 나온다. 반대 여론이 커지기 전에 군사작전하듯 월성 1호기를 폐쇄한 과정에서 현 정권 인사들의 직권남용이 있었는지를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백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함께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