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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모(37·오른쪽 두 번째)씨와 변론을 맡은 박준영(왼쪽 두 번째) 변호사 등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박준영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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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다방배달원 10년간 '억울한 옥살이'
"피와 흰 지방이 묻은 칼을 봤어요."
20년 전 범인이 뒤바뀐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최모(37)씨가 살인 누명을 벗게 된 결정적 근거다. 법원은 진범인 김모(40)씨가 사건 당일 피 묻은 옷을 입고 찾은 집에 살던 임모씨 진술을 토대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영화 '재심'의 소재가 되기도 한 '약촌오거리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누명을 쓰고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최씨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이성호)는 지난 13일 "국가가 최씨에게 13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가족 2명에게도 "국가가 총 3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법원은 왜 김씨를 진범으로 봤을까.
광주고법 전주1형사부(부장 황진구)는 2017년 12월 1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당초 범인으로 몰려 만기출소한 최씨 대신 김씨를 진범으로 재차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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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최모(37)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씨 사건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오른쪽)와 진범을 체포했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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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재심서 무죄…검찰, 진범 김씨 체포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가져온 식칼은 끝이 휘어져 있고, 칼끝에는 피와 돼지 비계 모양의 흰색 지방이 묻어 있었다"는 김씨 친구 등의 구체적인 진술을 토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택시기사가 살해된 날 새벽 피고인이 피 묻은 옷을 입고 사건 현장에서 400m 떨어진 친구 임모씨 집에 왔다"는 진술도 나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나중에 '그 칼은 닭 도축장에서 가져왔다'고 진술을 번복했지만 '피와 지방이 묻은 칼을 친구 임모씨에게 건넸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했다"며 김씨를 진범으로 판단했다. 김씨는 당시 최후 변론에서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지금도 밖에서 돌아다니며 이 상황을 보며 웃고 있을 수 있다"며 재판부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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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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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강압·부실 수사' 논란 끊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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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7분쯤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흉기로 12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초 이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부실·강압 수사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검찰은 인근 다방의 커피 배달원이었던 최씨(당시 16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최씨가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중 택시기사 유씨가 욕설을 한데 격분해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씨는 2001년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돼 2010년 만기출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에도 '진범이 따로 있다'는 등의 제보가 이어지면서 부실 수사 논란은 계속됐다. 2003년 재수사에 나선 군산경찰서는 김씨 등 2명을 진범으로 지목해 긴급체포했지만, 검찰은 진술 번복과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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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모(37·오른쪽)씨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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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나라수퍼 사건'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 변론
최씨는 2013년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5년 12월 재심을 확정했다. 최씨의 재심 변론은 '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등 수차례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박준영(46) 변호사가 맡았다. 이어 광주고법은 2016년 11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재심에서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크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지 4시간 만에 경기도 용인에서 진범 김씨를 체포했다. 사건 이후 이름까지 바꾼 김씨는 "2013년 경찰 조사 때 내가 '살인했다'고 진술한 것은 이혼한 뒤 나와 동생들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 고통을 주고 관심을 받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피해자 부검 결과 및 참고인·목격자 진술 등에 비춰 김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구속기소했다. 2017년 5월 1심을 맡은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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