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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만드는 조각보 민족사

한겨레 6일 전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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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과 모양이 다른 헝겊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 ‘조각보’란 이름의 여성평화운동단체는 지난 십년 동안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 모임을 진행해왔다. 사진은 <이렇게 고운 색>(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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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미래] 정병호|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켄터키주 퍼듀카시에 있는 미국 국립퀼트박물관에서 흑인 노예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본 적이 있다. 자투리 헝겊을 이어 붙여 만든 그 낡은 이불과 보자기를 보며 마음이 저렸다. 동물처럼 부림을 당하던 여성들이 소박한 재료로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들이었다. 강요된 삶을 살면서도 꺾이지 않은 강인한 인간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는 치열한 저항의식을 담은 조각보도 있었다. 자유민이 되는 길을 알려주는 ‘지하철도’ 암호 패턴도 있고, 노예들의 참혹한 현실을 수놓은 그림도 있었다.

박물관 앞으로는 푸른 강물이 도도하게 흘렀다. 탈주한 노예 여성 엘리자가 어린 아기를 안고 떠내려오는 얼음 덩어리들을 징검다리 삼아 뛰어서 건넜다는 오하이오강이었다. 노예해방의 계기가 되었다는 소설 <엉클 톰스 캐빈>을 읽으며 어릴 적 상상했던 것보다 넓고 물살이 빨랐다.

가난한 살림의 유물로만 여겼던 한국의 조각보도 대표적 민속공예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조각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규방의 아가씨나 골방의 침모 등 신분과 나이를 불문하고 가부장제에 억눌려 살던 여성이 한땀 한땀 바느질에 바쳤을 인내와 정성이 가여워서 그랬다.

요즘은 조각보의 파격적인 선과 면의 조합이 아름답게 보인다. 크기와 색상이 다른 천을 다채롭게 이어붙인 창의력도 놀랍다. 차별과 억압이 질식시키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의 미학을 이제 비로소 알아보기 시작한 걸까?

‘조각보’란 이름의 여성평화운동단체는 지난 십년 동안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 모임을 꾸준히 진행했다. 근대사 속에서 남북으로 갈라지고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아온 한민족 여성들이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출신 배경,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존중하며 듣는 ‘평등한 대화’에 참여한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거침없이 말했다.

“영감 잘 만난 사람은 하나도 없네!” 북한에서 온 여성이 한마디 하자,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남한 여성들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과연 그랬다. 식민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남성들은 그리 의지할 만한 가장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에 의해 노동자로 동원되거나 군대로 끌려갔고, 좌절하여 가족을 괴롭히는 폭군이 되기도 했다. 오히려 무시당하던 여성들이 비상한 시대에 가족을 구하는 살림과 돌봄의 달인이 됐다.

“별일을 다 해봤어!” 전쟁과 재난으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살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남자 일 여자 일 가리지 않고 해서” 척박한 이국땅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배급 제도가 무너지면 암시장과 장마당을 만들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따리 장사를 했다. 나라가 망하고 체제가 무너져도 그렇게 여성들은 가족을 지켜냈다. 그만큼 그들은 당당하고 떳떳했다.

그런 여성들조차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목소리 큰 남성에게 눌리고, 교육 많이 받고 지위 높은 사람에게 밀려서 제대로 자기 이야기를 못 했다. 그들의 삶 이야기는 사적인 신세타령으로 여겨져 역사적 사실로 존중받지 못했다. 차별 현실에 익숙한 여성은 권위적인 자리에서는 눈치껏 침묵했다. 그러나 서로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평등한 대화’ 모임에서는 내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여성들의 삶 이야기 모임은 뜨겁고 활기찼다.

“나라도 가족도 중요하지 않아. 요즘은 내가 우선이야. 너무 좋은 거 있지!” 겹겹의 책임감에 눌려 살던 여성이 토로한 말이다. 지금도 두근거리는 성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꿈과 계획을 펼쳤다. 오래전 불륜 경험도 털어놓고, 최근 결정한 이혼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각자 살았던 시대와 환경이 달라도 진솔한 삶 이야기에 여성으로서 공감하고 새롭게 자신의 삶도 돌아봤다고 했다.

경계를 넘어 한자리에 모인 여성들이 다양한 억양과 말투로 들려준 삶 이야기는 ‘국사’가 무시하고 잘라버린 수많은 개인과 가족들의 역사였다. 국가권력과 제도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초국가적 삶의 방식은 식민과 분단과 냉전 시대를 살아온 한민족의 생존 전략이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자투리 헝겊 같은 삶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이어 나가야 ‘조각보’처럼 온전한 민족사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십만원권 지폐를 만들게 되면, 오만원권 신사임당 그림 못지않게 곱고도 강인한 조각보를 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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