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페이지

전세계 일상 깊숙이 들어온 GMO…한국선 작물재배 꿈도 못꾸는 사연은

매일경제 2021.12.06 원문보기
◆ SPECIAL REPORT : 세계는 지금 유전자가위 전쟁 ◆

매일경제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현재 유전자변형생물체(GMO)로 만든 식품을 드시고 계십니까." 한결같이 "먹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그래서 "GMO 식품을 왜 안 드시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GMO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잖아요."

예상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GMO 현황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첫째, GMO 식품을 먹지 않는다고 답한 그 사람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GMO를 먹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작년 한 해 식품용과 농업(사료)용으로 수입을 승인한 GMO는 무려 1197만t에 달한다. 대부분이 옥수수와 콩이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옥수수와 콩 중 95%가량이 이미 GMO인 셈이다. 옥수수는 주로 가축용 사료로 사용되고, 콩은 주로 식용유와 같은 기름을 짜는 데 많이 사용된다. 직접 식용유를 먹든, 식용유가 들어간 가공식품을 먹든, 소고기를 먹든 직간접적으로 GMO 식품을 섭취하고 있는 셈이다.

매일경제
둘째, GMO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GMO는 엄격한 위해성 심사를 거친다. 그것도 무려 5개 부처가 협의 심사를 하게 돼 있다. 총괄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환경부(국립생태원), 해양수산부(국립수산과학원)가 각각 별도로 심사한다. 부처별로 20명 전후의 전문가가 모여 해당 GMO가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검사한 뒤 문제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과가 바로 작년 1197만t의 GMO 수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GMO가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GMO 현황을 잘 모르고 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GMO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는 측면이 크다. 정부와 정치권, 산업계가 다 마찬가지다. GMO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이야기를 하면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NGO), 유기농단체 등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GMO 곡물 수입은 다른 방법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옥수수와 콩을 수입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곡물 수출국들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의 전체 옥수수·콩 재배면적 중 GMO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90%를 훌쩍 넘는다. 또한 작년 세계 종자 시장 규모 449억달러 중 47.7%인 214억달러를 이미 GMO 종자가 차지하고 있다(IHS Markit, 2021).

◆ GMO 재배 승인 신청 1호는 14년째 서랍에


매일경제
우리가 이처럼 일상에서 GMO를 접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GMO 작물을 재배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효연 제주대 생명공학부 교수가 개발한 제초제 저항성 잔디는 국내 GMO 재배 승인 신청 1호 작물이다. 첫 개발은 2000년, 첫 신청은 2007년에 이뤄졌다. 이후 자료 보완 요구에 따라 2010년과 2014년에도 추가로 신청됐다. 농작물인 만큼 농촌진흥청이 신청을 받았다. 농촌진흥청이 나머지 3개 부처와의 협의 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첫 신청 이후 어느덧 14년이 흘렀지만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이 교수는 지금껏 4개 부처에서 각각 요구하는 보완 요청 자료를 준비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그사이 농식품부에서 9차례, 환경부에서 8차례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해수부에서는 독성 평가에 사용되는 물고기인 제브라피시 배아 독성 영향평가 실험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물고기가 잔디를 먹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실험해 결과를 제출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환경부로 보낸 가장 최근 보완 자료의 경우 작성하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

이 교수가 개발한 제초제 저항성 잔디는 한마디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다. 예컨대 골프장에서 잔디를 관리한다고 치자. 대개 특정 잡초를 죽이는 선택성 제초제를 뿌린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잡초를 잡기 위해 다양한 선택성 제초제를 사용해야 한다. 1년에 6~7차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제초제 저항성 잔디에는 그냥 일반 비선택성 제초제를 뿌리면 잡초는 죽고 잔디는 산다. 결과적으로 1년에 2번 정도만 제초제를 뿌리면 된다. 이택준 제주한라잔디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이 교수가 개발한 잔디를 심으면 제초제 사용량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제초제 자체 가격도 싸고, 제초제를 뿌리는 인건비도 줄어들어 골프장 입장에서 보면 제초 경비를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세계 시장에 내놔도 당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잔디이지만 국내에서 재배 승인을 받지 못하다 보니 수출길도 막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사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농촌진흥청 담당자는 "최종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가 안 된다"며 "심사 진행 상황을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 GMO 위해성 주장에 반대하는 과학계 입장


매일경제
사람이 먹지도 않는 GMO 잔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이렇다 보니 식용 작물에 대해서는 GMO 재배 신청을 꿈꾸기조차 힘든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제초제 저항성 잔디가 국내 개발 GMO 재배 승인 신청 1호이자 마지막인 이유다. 대학과 기관 연구실에서 개발된 GMO 작물이 수십 건에 달하지만 재배 승인 신청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정부가 GMO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에 과학계는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GMO에 대한 접근이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GMO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전혀 입증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계에서 내세우는 대표적인 근거는 미국학술원에서 2016년에 발간한 'GMO에 대한 영향평가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GMO가 소비되기 시작한 1996년 이래 건강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해충 저항성 GMO 작물 등 재배로 농약 사용량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인 조형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GMO는 생명공학적인 방법으로 한 생명체에 외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도입(주입)해 그 외래 유전자가 새로운 형질을 드러내게 한 생명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유전자 변형은 GMO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농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교배 육종도 유전자 변형(유전자들간 재조합)을 일으키는 것이고,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을 사용해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 내는 돌연변이 육종도 유전자 변형을 일으킵니다. 유전자 변형 정도는 GMO에 비해 오히려 이런 전통 육종이 더 심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GMO 반대 단체에서 건강 위해성을 근거로 제시하는 몇 개 논문이 있지만, 실험 방법에 있어서 과학적 오류가 발견돼 과학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보다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900여 편 논문을 분석해 발간한 미국학술원 보고서를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요."

◆ GMO 포기하더라도 유전자 가위는 잡아야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리나라에서 GMO 재배를 본격화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전 세계 GMO 시장은 이미 글로벌 종자회사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GMO 작물을 개발해 상용화하기까지는 평균 13~14년의 시간과 1600억원 이상 투자비가 소요된다. 농촌진흥청에서 GMO를 담당했던 김동헌 미래식량자원포럼 부회장은 "국내 대학과 주요 종자 기업들에서 정부 지원 아래 GMO 작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많이 해왔고 성과도 여럿 거뒀지만 상용화 측면에서는 이제 포기 단계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며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절망감이 퍼져 있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늦어버린 GMO와 달리 '유전자 가위'(편집) 기술은 좀 다르다. 유전자 가위는 우리나라가 세계 6대 원천 특허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는 분야다. 유전자 가위는 GMO처럼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세포가 갖고 있던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 염기 서열 일부를 바꾸는 기술이다. 이때 사용하는 분자 가위 중 가장 최신의 '크리스퍼-캐스9' 기술을 성공한 과학자들이 작년에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에서도 유전자 가위 기술은 GMO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김영만 산업부 바이오융합산업과장은 "GMO는 최종 산물에 외래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유전자 가위 기술은 극소수 염기를 제거하는 기술인 만큼 자연 발생적인 돌연변이와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GMO 개발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반면 유전자 가위 작물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은 5~7년, 비용은 10억~20억원에 불과하다. 글로벌 GMO 경쟁 대열에 합류하기는 어려워도 유전자 가위 경쟁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승산이 있는 셈이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 종자회사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진다. 정부가 '유전자변형생물체법(LMO법)' 개정을 통해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배경이다. 정부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적용된 작물에 대해서는 5개 부처의 협의 심사를 의무화하고 있는 일반 GMO와 달리 사전검토제를 통해 위해도가 낮은 경우 심사 절차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 유전자 가위를 GMO와 구분하는 선진국들


과학계에서는 정부의 LMO법 개정안이 세계적인 추세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사전 검토로 완화한다고 하지만 GMO 위해성 심사에 비해 더 늘어난 7개 부처가 공동으로 검토하게 돼 있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가위에 대해 '신규 유전자변형생물체(GMO)'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전자 가위는 GMO와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어서 주요국에서는 GMO와 유전자 가위를 분명하게 다른 기술로 구분하고 있다"며 "우리는 관련 법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이 마치 GMO의 새로운 형태인 것처럼 규정하려 하고 있어 향후 기술과 산업 발전의 발목을 스스로 잡는 꼴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유전자 가위 기술 적용에 앞장서고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 농무부(USDA)는 2018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산물은 GMO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으며 일본도 그 이듬해 최종 생물체에 외래 유전자가 남아 있지 않으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유럽 사법재판소는 2018년 "유전자 가위 등 신육종 기술 산물도 현행 유럽연합(EU) 법률에 따른 GMO로 간주한다"고 발표해 파장이 일었지만 EU 내 주요국의 반발에 따라 현재 새로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유럽조차도 유전자 가위에 대해서는 GMO와 차별화되는 신유전자기술(NG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선진국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다양한 기능성 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예컨대 땅콩을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땅콩 안에 있는 알레르겐(알레르기 원인물질) 유전자를 잘라낸 품종을 개발하면 누가 먹어도 알레르기 걱정이 없는 땅콩을 재배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아미노산 성분을 높인 토마토에 대한 시판을 승인했다.

박현진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곡물 포함 시 21%에 그치는 데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코로나19 등 팬데믹 등으로 식량안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유전자 가위와 같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 미래 식량안보 확보 및 농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

함께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