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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게 그려달라고 댓글 단 이준석, 기억에 남아"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오마이뉴스 2021.06.10 원문보기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
5월 24일을 끝으로 <경향신문> 시사만화인 '장도리' 연재가 막을 내렸다. 박순찬(51) 화백이 <경향신문>에 입사해 1995년 2월 6일 처음 연재를 시작한 '장도리'는 그날그날 사회 풍자만화를 통해 독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면서 26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재가 끝난 지 어느새 2주가 지났다. 연재 종료 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지난 7일 박 화백을 전화로 연결해 26년 '장도리' 연재를 마친 소회와 앞으로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 화백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그만두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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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찬 화백 ⓒ 박순찬 제공



- 연재가 끝난 걸 실감하시나요?
"매일 숙제를 하나씩 하다가 이제 벗어난 느낌이에요. 근데 지금 또 출판사와 약속한 책 작업을 하느라고 별다른 해방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장도리'라는 신문 만화 연재를 마쳤을 뿐이고, 만화 그리는 일은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숙제는 계속해야 되는 거겠죠."

- 왜 그만두신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오래 했다는 생각이고, 또 다른 작업을 좀 해야 될 필요가 있었어요. 사실 그만두려고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계속 미루다가 그만두게 된 겁니다."

- 조금만 더하면 30주년인데 아쉽지 않으세요?
"어떤 연재물이든 영원히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30년을 채운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장도리'도 언젠가는 연재를 마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고 지금 좀 다소 아쉽더라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뒤돌아보면 어떠세요?
"매일 마감을 하는 생활을 해오면서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연재를 마치고 나니까 그동안 뭘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 돌아보게 되는데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만화를 그려왔고 보람을 느낀 적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독자들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다는 사실이 아쉽죠. 26년이라는 세월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꽤 무거운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그 시간을 앞으로의 작업에 중요한 교훈과 경험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어요."

- 중요한 교훈과 경험이라면 어떤 걸 말하나요?
"앞으로 제가 계속 만화작업을 해야 되는데 26년 동안 '장도리'를 그린 것이 큰 경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장도리'라는 게 여러 가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양하게 다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큰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화는 우회적으로 비판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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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만화 '장도리' 마지막화 ⓒ 박순찬



- 1995년 2월 6일 첫 만화 연재를 시작하셨잖아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향신문>에 입사하셨는데 어떠셨어요?
"당시는 '고바우'나 '왈순아지매'나 '나대로 선생' 같은 수십 년 경력의 원로급들이 신문에서 활약 중이던 시절이었어요. 그 틈에서 제가 어린 나이에 새로운 만화 연재 시작을 하려고 하니까 중압감이 매우 컸습니다. 과거에는 신문 네 컷 만화 같은 경우에는 원로급들이 연재 시작하기 전 보통 잡지 등에서 상당 기간 만화 연재를 통해서 검증된 후에 신문사에서 발탁하곤 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연재 경험도 없이 공채라는 형식을 통해서 바로 연재를 맡게 된 거라 그 부담이 더욱 컸습니다."

- 그 부담은 어떻게 이기신 거예요?
"제가 연재를 시작하기로 독자들과 약속했기 때문에 어떻게서든 이겨낼 수밖에 없었죠. 거기서 제가 그만둔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독자와의 약속을 깨는 것이고 저로서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중압감을 이겨내려고 했죠. 신문사에서도 많이 격려해주시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 처음 '장도리' 연재할 때 기억나세요?
"그때는 가뭄이 굉장히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신문이든 방송이든 가뭄 관련 피해 보도가 많이 있었어요. 가뭄이 일어나면 농축산업자들에게 큰 피해가 가고 도시민들에게도 많은 피해가 갑니다. 지금과는 그 양상이 좀 달랐어요. 지금은 농축산업물 같은 경우에 대부분 다 수입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당시에는 수입 개방이 지금처럼 이루어지기 전이었거든요. 그 가뭄 피해 여파가 도시민들한테도 많이 있었어요. 제가 가뭄을 소재로 해서 만화를 그렸습니다."

- 그게 나가고 반응이 어땠나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반응을 바로 알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지금과 달리 만화도 경향신문 구독자만 볼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반응이 어땠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아마 그다지 좋은 반응은 아니었을 거로 추정합니다."

- 입사 초기 경향신문이 한화그룹 계열 신문이라서 제약이 많았다고 하던데요?
"아무래도 재벌그룹 계열 신문이기 때문에 만화 그릴 때도 기업 문제를 다루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재벌계열 신문이든 아니든 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라는 자본 권력은 계열사뿐 아니라 수많은 영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매체든 재벌을 다룰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만화는 직접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기사와 다르게 그림과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어떤 문제점을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회적으로 재벌의 문제점도 풍자할 수 있는 만화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제약을 피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그 당시가 문민정부로 불리는 김영삼 정부였는데 정치 풍자의 제약은 없었나요?
"당시 김영삼 정부 후반기로 들어가는 시점인데 아무래도 정권 후반이다 보니까 문제점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어요. IMF 구제금융 사태도 벌어졌죠. 재벌과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연일 소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어요. 당시에 편집국장하고 그것 때문에 갈등이 꽤 있었습니다."

"이준석 후보의 댓글이 기억 남아"

- 매일 4컷 만화를 그리려면 압박도 컸을 것 같은데요.
"특히 초창기에 힘들었어요. 만화를 연재하면서 아무래도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일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고 어떤 위기를 극복할 방법도 생긴다는 것을 연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 만화 그리는 것도 지금과 다르지 않나요? 그땐 손으로 그렸을 거 같고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할 거 같은데요.
"예전엔 종이에 펜으로 먹물을 찍어 그려서 편집장에게 결재를 받고 넘기는 과정을 거쳤지만, 수년 전부터는 디지털로 그려서 바로 전송을 하는 방식으로 마감을 해왔습니다. 그리는 데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습니다."

- 2014년 말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은 게 88만 원 세대를 소재로 했던 2012년 12월 10일자 '장도리'였잖아요. 6년이 지났는데 마찬가지신가요?
"당시 그 만화를 제가 기억에 남는 만화 중에 하나라고 말씀드렸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문제인 거 같아요. 그래서 아주 옛날 만화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뭔가요?
"제가 매일 한편씩 그리다 보니까 워낙 수도 많고 딱히 뭘 어떤 한 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참 힘듭니다. 26년간의 연재를 마치면서 그런 질문도 많이 받고 인터뷰를 통해서 만화도 골라 보게 되는 계기가 됐는데요. 특히 옛날 거를 뒤져보다 보면 하나하나 그때 당시 생각도 나고 돌이켜 봤을 때 다 똑같이 애정이 있는 만화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뭐 하나 딱 꼽으라고 하면 힘듭니다."

- 추억 중 하나 소개해 주세요.
"지금 이준석 후보가 굉장히 조명을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생각이 나는 건데 신문에 게재된 만화 밑에 댓글란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다 이준석 후보가 '저 좀 잘생기게 그려 주세요'라고 댓글 단 적 있어요. 그래서 그게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기사화까지 된 적이 있어요.

제가 거기에 따로 댓글은 안 달았지만, 사람들이 굉장히 재밌다는 반응이었죠. 보통 정치인들이 그림에 불만 있으면 암암리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얘기한다든지 압력 넣는다든지 부탁한다든지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공개적으로 잘 생기게 그려 달라고 댓글을 남긴 정치인은 처음이었고 아직도 그런 사람은 못 본 거 같습니다. 그래서 뭔가 굉장히 참신하게 느껴졌고 젊은 정치인은 좀 다르다는 느낌도 들었죠."

- 그럼 그 이후 잘생기게 그리셨어요?
"이준석 후보가 지금은 많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그 전에 사실 그렇게 주목받을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 만화에 등장한 것도 전개상 필요해서 보조적인 역할로 나왔던 건데 그 후에는 사실 딱히 그릴 일이 없었습니다."

"정치 풍자는 더 활발해졌어요"

- 신문 4컷 만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거 같아요.
"네 컷 만화는 종이신문 편집에 맞게 만들어진 형식으로 탄생한 건데 굉장히 역사가 오래됐죠. 그런데 종이신문을 점점 보지 않기 때문에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에 대한 접근 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신문을 통해 보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자기가 찾아서 보는 식으로 바뀌고 있죠.

또 '장도리' 같은 시사 이슈를 다루는 풍자만화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를 시사 풍자만화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고정관념입니다. 신문에 꼭 그런 정치 사회 풍자만화를 그려야 될 필요도 없고 또 꼭 신문에만 그런 시사만화가 있어야 된다는 법도 없어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과거보다 풍자는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인터넷 같은 거 돌아다녀 보시면 아시겠지만, SNS 등을 통해 많은 분이 합성이라든가 만화 형식으로 풍자를 많이 하고 있어요. 과거와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활발해진 거예요. 웹툰이나 이런 데서도 그 내용이 더 세련된 방식으로 사회풍자를 하고 있고 비판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신문의 어떤 특정형식 만화가 없어진다고 해서 아쉬워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 화백님에게 만화란 무엇인가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야 되는 일이며 잘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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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리'의 마스코트 냥도리 ⓒ 박순찬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제가 지금 책을 두 권 작업 중에 있어요. 하나는 캐리커처 교본인데요. 그림을 전혀 그려 보지 않았고 그림에 관심도 없고 그림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책입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에요.

아주 두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그림에 좀 더 친숙해지고 캐리커처로 사람의 얼굴을 담게 되는 것까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만들고 있어요. 또 하나는 박홍순 작가님하고 같이 작업 중인데요. 인류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주요 인물들 간추리고 냥도리를 등장시켜서 풀어내는 책입니다. 일단 그 두 권을 준비 중입니다."

- 이제 시사 풍자만화는 못 보나요?
"풍자만화도 다른 형식으로 일단 지금 책 작업과 또 다른 거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다른 형식의 풍자만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요."

- 그동안 '장도리'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그동안 '장도리'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독자분들께서 성원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매일 열심히 구상하면서 만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재를 해왔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만화 작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두었지만 계속 '장도리'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더 좋은 만화로 독자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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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WBC 복지TV 전북방송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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